북가주 곳곳에 대한독립의 숨결을 담고 있는 역사와 유적지, 인물들을 보존·발굴·계승하자는 의미로 진행되고 있는 ‘사라지는 것을 찾아서’ 그 다섯 번째 강연회가 7일 열렸다.
샌프란시스코 한인박물관 추진위원회(이하 SF박물관 추진위) 주관으로 천주교 산호세 한국 순교자 성당(주임신부 한승주 스테파노)에서 가진 이날 강연회는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의 이성도 동포문화 담당영사가 ‘한국 근현대사와 북가주’를 주제로 강연했다.
<7일 샌프란시스코 한인박물관 추진위원회 주관으로 ‘사라지는 것을 찾아서’ 그 다섯 번째 강연회가 열렸다. 앞줄 정은경 위원장, 뒷자리 오른쪽부터 강연을 맡은 이성도 영사, 김진덕정경식 재단의 김한일 대표, 김순란 이사장, 안상석 실리콘밸리 한인회장. 이외에 정승덕 SF평통 회장, 이영숙 몬트레이 문화원장, 이진희 이스트베이 한인회 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역사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이 영사는 조선후기와 일제강점기 전후 샌프란시스코, 북가주 일원의 한인 이민사와 선조들의 항일 독립운동사를 설명했다.
100여 명이 참석한 이번 강연의 사회는 SF 한인박물관 추진위의 이정현 위원이 맡았으며, 김영삼 요셉 신부의 기도로 시작됐다.
정은경 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내년은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라며 “친일 미국인 스티븐스를 샌프란시스코 페리빌딩에서 사살(1908년 3월23일) 한 장인환·전명운 의사를 무료 변론한 외국인 변호사와 두 의사의 통역을 맡았던 신흥우 씨 등 의인들의 후손을 찾는 의미 있는 일을 하려한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북가주 12곳과 윌로우스 비행학교, 중가주 등 대한독립의 역사를 담고 있는 유적지를 표시한 지도를 제작, 한국에서 오는 여행객에게 배포하는 문제를 생각 중”이라며 해외독립투사들의 발자취를 경험토록 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안상석 신임 실리콘밸리 한인회장은 “이 지역은 한인 이민의 첫 정착지이자 독립운동의 시작점”이라며 샌프란시스코 등지의 주요 역사유적지를 나열하고 “선조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농장과 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번 돈을 독립자금을 보냈고, 우린 그 역사를 꼭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샌프란시스코 위안부 기림비가 설립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한 김진덕·정경식 재단의 김한일 대표는 "김학순 할머니(샌프란시스코 위안부 기림비의 할머니 조각상의 주인공)는 현재 성폭력 고발을 담은 ‘미투 운동’을 27년 전 처음하신 분”이라며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로서 겪은 일들을 처음 폭로했고, 이후 다른 피해자들이 나서기 시작했다”며 일제의 압제에서 희생당한 피해자들을 기리는 위안부 기림비 건립과정을 설명하며 울분을 터트렸다.
그러면서 “한인사회의 후원이 있었기에 샌프란시스코 위안부 기림비가 건립됐다”며 감사를 표했다.
뮤즈 앙상블의 러브미 텐더, 고향의 봄 연주와 유봉희 시인의 '보고싶다 세바람꽃' 시낭송, 김일현 무용단의 회관무와 부채춤 공연도 있었다.
이어 본격적으로 시작된 강연에서 이 영사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 중심이 돼 1903년 설립된 미주 최초의 한인결사 ‘상항한인친목회’의 역사와 공립협회(1905년)의 창립과 활동 등을 조명했다.
이 영사는 특히, 일제시대 최초의 의열투쟁인 장인환·전명운 의사의 역사적인 상항의거가 시발점이 돼 1년 후인 1909년 10월 안중근 의사의 의거가 일어났다며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항일독립운동단체인 공립협회와 이를 조직한 안창호, 이강 선생 등이 안중근 의사의 의거에 어떻게 직접적 영향을 미쳤는지를 설명했다.
장인환·전명운 의사 의거 이후(1908년) 꾸준히 논의돼 왔던 북미지역 한인단체의 통합이 실현돼 국민회와 북미 대동보국회가 통합, 마침내 '대한인국민회'(1910년 5월10일)로 출범한 점을 강조했다.
대한인국민회가 미주 한인사회의 독보적인 최고의 통일기구가 되어 독립운동의 전략을 짜고 기획하는 총본산의 역할을 담당하는 등 항일 독립운동을 최고의 목표로 활동했다는 점을 이 영사는 독립기념관 이명화 연구위원의 연구 논문을 인용해 밝혔다.
이 영사는 “1910년 8월 일제가 대한민국을 병합하고 식민통치를 시작하자 대한인국민회는 입법·사법·행정 등 3권 분립에 의한 자치제도 실시와 병역, 납세의무를 국민에게 부여하며 대한제국을 대신할 임시정부의 건설을 제창했다”며 “우리 민족 최초의 민주적 시스템을 운영한 경험을 얻었다”고 했다.
또한 국권 찬탈 후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수립시기까지의 10여간을 대한인국민회가 임시정부의 역할을 하며 통일 민족국가 건설을 최종의 목표로 재미 한인사회만이 아니라 국외 한인사회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단체로 활약했다고 덧붙였다.
이 영사는 대한인국민회 국민을 위한 국가 건설을 지향하고 그 목표와 시스템이 상해 임시정부로 이어져 오늘날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있게 한 근원이 바로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한 북가주에서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중가주에 농장 노동자로 정착한 선조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며 얻은 소득의 상당부분을 상해 임시정부 등의 독립자금으로 꾸준히 제공한 사실에 주목해 달라며 역사에서 눈에 뜨이지 못한 중가주 선조들에 대한 관심을 당부했다.
이 영사는 북가주 지역의 각종 독립운동 유적지와 선조들의 활동 장소를 직접 찾아다니며 시대별 연표와 장소를 일목요연 하게 정리한 자료를 소개하면서 북가주 동포들도 다함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정리해 나가는 데 동참할 것을 요청했다.
마지막으로 이영사는 “북가주 선조들이 우리의 국권회복을 위해 보여준 통합의 정신과 헌신을 후대들도 이어받아 보다 튼튼한 한인 커뮤니티를 만들어 나가자”고 강조했다.
샌프란시스코 한인박물관 추진위원회와 관련한 자세한 정보 및 후원은 웹사이트(sfkam.org)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김판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