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한국서 생각한 타임라인보다 훨씬 빠르다”
고금리와 대규모 해고 한파가 몰아치던 '테크 윈터(Tech Winter)'의 정점, 2024년 1월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부임한 이장훈 경제영사(중소벤처기업부 파견)가 임기 후반기를 맞았다. 그 사이 실리콘밸리는 생성형 AI의 폭발적 부침을 거쳐 하드웨어와 결합한 '피지컬 AI'로의 패러다임 시프트를 겪고 있다. 지난 2년 6개월 동안 세계 혁신의 최전선에서 한국 스타트업의 인바운드·아웃바운드 가교 역할을 해온 이 영사를 만나 현지 체감 경기와 진출 기업들을 향한 냉정하고도 실질적인 조언을 들었다.

<지난 2024년 2월 부임한 이장훈 경제영사가 2년 여 동안 혁신의 중심인 실리콘밸리와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에서 겪은 실질적인 경험에 대해 말하고 있다>
Q. 2024년 초 부임 당시와 비교해 현재 실리콘밸리의 투자 흐름과 경제 활력은 어떻게 변화했나.
A. "운이 좋게도 2023년 챗GPT 등장 직후, AI 붐이 스타트업 씬으로 본격화하는 시점에 부임했다. 현재 실리콘밸리 베이지역의 투자 규모는 미국 전체의 5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압도적이다. 특히 최근 통계를 보면 이 지역 투자 금액이 지난 23~24년 대비 거의 '더블링(2배 증가)' 수준으로 뛰었다. 한국에서 바라보는 '테크 윈터'의 위축된 시선과 달리, 현장의 자본 유동성과 기술 동력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Q. 생성형 AI 중심의 패러다임 시프트가 구체적으로 스타트업 생태계를 어떻게 바꿨나.
A. "초기에는 챗GPT API를 활용해 단순한 여행 일정을 짜주는 등 애플리케이션·서비스 등 여러 가지 시도가 많았다. 빅테크의 파운데이션 모델이 급진화되면서 이런 단순 서비스들이 플랫폼에 흡수(종속)되는 우려가 컸다. 그러나 지금은 시장이 많이 정리됐다. 단순 앱 단계를 넘어 'AI 에어전트', 한국이 강점을 가진 제조·제조업 데이터 백그라운드를 결합한 '피지컬 AI' 및 모빌리티, 바이오 등 버티컬(수직적) 영역에서 확실한 타겟을 가진 스타트업들 위주로 재편되는 흐름이다."
Q. 최근 샌프란시스코 도심의 공실률 부침 속에서, 테크 에코시스템의 공간적 이동도 눈에 띄는데.
A. "젊은 AI 스타트업들과 글로벌 액셀러레이터 와이콤비네이터(YC)가 샌프란시스코 오라클 파크 인근의 미션베이 쪽으로 대거 이동했다. 현지에서는 이 일대를 '세레브럴 밸리(Cerebral Valley)'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만 이들 젊은 창업가들은 오피스를 직접 임대하기보다 재택근무나 공유 오피스를 쓰기 때문에, 도심의 상업용 빌딩 공실률(23~25% 수준) 자체를 대폭 낮추지 못하고 있다. 공간의 밀집도가 샌프란시스코 동부 연안을 중심으로 재배치된 셈이다."
Q. 한국 스타트업들이 실리콘밸리 진출 시 가장 흔하게 범하는 시행착오는 무엇인가.
A. "냉정하게 말해 정보나 법인 설립 툴이 부족한 시대는 아니다. 문제는 '체감 물가'와 '타임라인'의 미스매치다. 주거비, 식비, 이동비 등 현지 물가는 한국의 4~5배에 달한다. 매출이 없는 초기 1~2년 동안 한국에서 유치해 온 투자금(런웨이)이 녹아내리는 속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본인은 '언제까지 제품-시장 적합성(PMF)을 찾고 세일즈를 일으키겠다'는 계획을 세우지만, 현지에서는 그 속도가 훨씬 지연된다. 이 과정에서 한국에 있는 투자자, 내부 팀원 간에 이견이 생기며 무너지는 경우가 가장 안타깝다. 오기 전에 타임라인과 자금 계획에 대한 철저한 '컨센서스(합의)'와 '얼라인(정렬)'을 맞춰야 한다."
Q. 총영사관이 하반기에 독자적으로 추진 중인 지원 프로그램이 있다면.
A. "스타트업들이 가장 목말라하는 것은 단순 자금이 아닌, 현지 네트워크를 쥐고 있는 '로컬 VC'의 투자다. 아시아·태평양 시장을 이해하는 로컬 VC들과 연계해 스타트업들을 1대1로 매칭하는 '오피스 아워(프라이빗 IR)'를 하반기에 더욱 강화할 예정이다. 또한, 즉각적인 수출 성과가 나오는 K-뷰티·K-푸드 등 소비재 스타트업을 위해 SF모마(SFMOMA) 등 현지 로컬 랜드마크와 연계한 팝업 및 브랜드 전략 수정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Q. 미래 창업가들에게 전하고 싶은 '실리콘밸리 정신'과 제언은.
A. "결국 '문화'다. 3~4시간씩 스탠딩 네트워킹을 하며 서로의 역량을 냉정하게 보면서도, 실패를 용인하는 독특한 혁신의 공기가 있다. 정부나 유관기관이 제공하는 초기 정착 프로그램(KSC, 창진원 등)은 훌륭한 디딤돌이지만, 거기에 안주(만족)하면 안 된다. 초기 세팅이 끝났다면 지원 기관의 울타리를 과감히 벗어나 진짜 현지 고객과 마켓 중심의 궤도로 뛰어들어야만 이 거대한 벽을 넘을 수 있다."
<김판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