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 캘리포니아 한인 단체들이 85년 만에 대한민국 국립묘지로 유해봉환을 앞둔 우운 문양목 애국지사의 묘소를 찾아 참배했다.
12일 멘테카 파크뷰 공원묘지에서 진행된 참배 행사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50여 명의 한인이 참석해 문 지사의 묘소에 헌화와 분향했다.
<12일 한인 단체장 및 지역 한인, 한국 정부 관계자들이 멘테카 파크뷰 공원묘지에 안장돼 있는 우운 문양목 애국지사의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85년 만에 대한민국 국립묘지로 유해봉환을 앞두고 있다.>
주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총영사 임정택), SAN FRANCISCO & BAY AREA 한인회(회장 김한일), 이스트베이 한인회(회장 정경애), 새크라멘토 한인회(회장 이모나), 몬트레이 한인회(회장 박희례), 민주평통 샌프란시스코협의회(회장 최점균), 광복회 미서북부지회(회장 윤행자) 등 한인단체들은 오는 8월 12일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고인에게 작별 인사를 전했다.
<참석자들이 문양목 지사 묘소에 참배한 후 기념 촬영하고 있다.>
이날 참배 행사는 문 지사의 유해봉환 법정대리인을 맡은 최홍일 변호사가 문 지사의 업적을 낭독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임정택 총영사는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문양목 지사님의 유해봉환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다”며 “오늘 참배 행사에도 많은 분들이 참석해 감사드린다”고 했다.
김한일 SAN FRANCISCO & BAY AREA 한인회장은 “문양목 애국지사께서는 일본의 한국 침략을 지지하던 더럼 스티븐슨에게 찾아가 항의했고, 스티븐슨을 저격한 장인환, 전명운 의사의 구명운동을 펼치셨다”면서 “한인회의 전신인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을 역임했으며 샌프란시스코 지역 한인들의 화합과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앞장서 활동해 오신 분”이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아 해방된 조국의 품으로 돌아가는 문 지사님께 많은 한인들과 마지막 인사를 드릴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한다”며 “특별히 유해봉환을 위한 법적 문제 해결에 앞장선 최홍일 변호사, 임정택 총영사 등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 관계자들께도 감사 인사를 드린다”고 덧붙였다.
최 변호사에 따르면 문 지사의 유해는 오는 8월 12일 대한민국 국립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12일 한인 단체장 및 지역 한인, 한국 정부 관계자들이 멘테카 파크뷰 공원묘지에 안장돼 있는 우운 문양목 애국지사의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윤행자 광복회 미서북부지회장은 “문 지사님을 비롯해 미국 이민 선조들의 독립을 위한 활동을 우리가 잊어선 안된다. 이분들이 계시지 않았다면 지금의 발전된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라며 “그동안 미국에서 고생이 많으셨던 문 지사님께서 고국에서는 편하게 쉬시길 바란다”는 소회를 밝혔다.
정경애 이스트베이 한인회장, 이모나 새크라멘토 한인회장, 박희례 몬트레이 한인회장, 이경희 샌프란시스코한미노인회장, 이진희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 샌프란시스코지회장, 최점균 민주평통 샌프란시스코협의회장 등도 인사말을 통해 문 지사가 살아생전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해방된 조국의 품에서 영면하시길 기원했다.
<문양목 애국지사의 묘소를 참배한 후 대형 태극기 앞에서 기념 촬영하고 있다.>
김진덕⸳정경식 재단의 김순란 이사장은 민족시인 이육사의 시 ‘광야’를 낭송했다.
한편, 이날 참배 행사 참석자들은 새크라멘토에 거주하고 있는 독립운동가 이하전 지사의 자택을 방문했다.
1921년생으로 올해 103세인 이 지사는 현재 생존한 독립유공자 중 최고령이다. 이 지사는 일본 유학 중 독립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렀다. 1948년 미국으로 건너와 미군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인 이민사에도 큰 업적을 남겼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문양목 지사 참배행사 후 이하전 애국지사의 자택을 방문한 관계자들(위). 이하전(가운데) 애국지사가 김한일(오른쪽) SAN FRANCISCO & BAY AREA 한인회장, 임정택 총영사.>
올해 80주년 광복절 기념식에 대한민국 정부의 초청을 받았지만, 고령으로 고국 방문이 무산됐다. 대신 아들인 이인철씨가 이 지사를 대신해 기념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 문양목 지사는 누구
1905년 을사늑약 체결 후 미국으로 건너와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항일민족운동을 펼쳤다. 1907 샌프란시스코에서 대동보국회 창립에 참여해 회장으로 활동했으며, 대동보국회의 기관지인 대동공보의 주필을 맡아 한인들을 하나로 모으고 조국의 독립을 위한 활동에 앞장섰다.
특히 고종 황제의 외부고문이었던 친일파 더럼 스티븐슨이 190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크로니클 등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이 일본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접하고 직접 스티븐스를 찾아가 항의했다. 이후 스티븐스의 저격에 나선 장인환, 전명운 의사의 의거 이후 체포된 이들을 위해 변호비용을 모금하고 두 의사의 의거 정당성을 널리 알리는 등 구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또한, 대동보국회가 대한인국민회로 통합된 후 현 한인회의 시초가 된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으로 당선돼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에 앞장섰으며 군인 양성 운동도 적극적으로 펼쳤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1940년 12월 25일 71세로 별세, 맨테카 묘지에 안장됐다.
대한민국 정부는 문 지사의 활동을 높이 인정해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으며, 광복 80주년을 맞는 올해 독립된 대한민국으로 유해봉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온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