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양목 애국지사는 해방을 보지 못했지만, 그의 영현은 태극기와 함께 하늘을 가르며 대한민국으로 돌아갔다. 이번 귀환은 단순한 장례 절차가 아니다. 조국이 ‘당신의 희생을 잊지 않았다’고, 지금도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고 전하는 약속이다.
오늘의 우리는 광복 8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그분들이 걸었던 길 위에 서 있다. 그리고 이제, 85년 만에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간 그의 발걸음이 우리 가슴 속에 ‘잊지 말라’는 울림으로 새겨진다. <편집자주>
타국에서 눈 감은 미주 항일운동가, 해방된 땅에서 영면하다
85년 전, 성탄절 아침의 캘리포니아 하늘 아래 한 독립운동가가 조국의 해방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그의 이름은 우운 문양목(1894-1940). 문 지사가 1906년 미국에 첫 발을 디딘 지 120년 만에 대한민국으로 귀환한다. 부인 문찬성(1896-1976) 여사도 함께다.

<기다림의 끝, 103년 만의 귀향 —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 한인회관 앞, 두 지사의 영정을 앞세운 행렬이 조국으로 향하는 마지막 길에 올랐다. 지역 한인들과 후손들이 눈시울을 붉히며 작별을 고했다.>
문 지사는 부인과 캘리포니아 중부 멘테카의 한 묘지에 묻혔고, 조국은 그들을 품에 안았다.
광복 80주년을 사흘 앞둔 11일 아침,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 한인회관은 숨 죽인 듯 고요했다. 유해봉환식에서 영정을 든 손자와 증손, 김지수 한인회 이사장과 그린장 한인회 부회장이 영현을 모시고 함께 입장했다. 100여 명의 한인과 한국 정부 관계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마지막 길을 맞이했다. 영현은 조심스레 단상 위에 놓였고, 눈시울을 붉힌 이들은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 한인회관에 걸린 초대형 태극기를 배경으로, 관계자들이 문 지사 부부의 유해를 품에 안고 엄숙히 입장하고 있다. 미국 땅에서의 긴 망명과 투쟁의 세월이 끝나고, 이제 조국이 그들을 맞이한다.>
추모 기도가 울려 퍼진 뒤, 문 지사의 발자취가 담긴 영상이 상영됐다. 일제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던 외교 고문 스티븐스에게 분노로 항의했고, 장인환·전명운 의사를 위해 재판후원회를 결성했으며, 대한인국민회 회장으로 독립자금을 모으고 청년들을 깨우쳤던 일 등 화면 속 젊은 문양목의 눈빛은 오늘의 우리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문양목 지사의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문 지사의 유해 봉환 법적 대리인 최홍일 변호사는 유해 봉환 경과를 보고하며 “이민 3·4세 후손들이 조부모의 독립운동을 직접 느낄 기회가 없었다”며 목이 메었다. 이어 상영된 파묘·화장·유해 수습 영상 속에서, 땅 속에서 드러난 관이 햇빛을 맞는 순간, 장내는 숨죽인 탄식으로 가득 찼다.

<문 지사의 유해 봉환 법적 대리인을 맡은 최홍일 변호사가 유해 봉환 경과를 보고를 하고 있다.>
임정택 주샌프란시스코 총영사는 봉헌사에서 "광복 80주년을 앞두고 미국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한 문양목 지사의 유해가 각계의 노력으로 고국에 봉환된다"며 “지사의 민족정신과 유산을 후세에 계승하는 것이 지사의 뜻을 기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AI로 복원된 도산 안창호 선생과 유일한 박사의 축사가 이어지자, 시간은 100년을 거슬러 올라가 독립운동의 열기 속으로 데려갔다.
김한일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 한인회장은 “문 지사님의 조국애와 희생정신을 우리 한인사회가 반드시 기억하고 후세에 전하겠다”고 약속했다. 헌화식이 끝나자, 후손들은 차례로 머리를 숙였고, 그 순간 부부의 긴 여정은 마침내 고향을 향해 출발했다.

<미국 땅에서 반세기가 넘도록 고국을 그리워했던 그들이 마침내 가족과 함께 조국 품으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그리던 조국에서 영면을 취할 문 지사 부부에게 작별을 전하기 위해 캐빈 박 산타클라라 시의원, 이정순 전 미주한인회 총연합회 총회장, 김순란 김진덕·정경식 재단 이사장, 이모나 새크라멘토 한인회장, 최점균 민주평통 샌프란시스코협의회장, 이진희 코윈 샌프란시스코지회장, 이미전 북가주한국학교협의회장, 윤행자 광복회 미북서부지회장 등이 자리했다. 헌화식 후 손자가 유가족 대표로 감사 인사를 전했고, 영현은 고국으로 향했다.

<기나긴 세월 타국에서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문양목 지사 부부의 영현을 태운 리무진을 향해 한인들이 손을 흔들며 작별을 고하고 있다.>
이번 봉환은 샌프란시스코의 문양목 지사 부부를 비롯해, 로스앤젤레스(임창모 지사), 애틀랜타(김재은 지사), 브라질(김기주·한응규 지사), 캐나다(김덕윤 지사)에서 각각 진행됐다. 여섯 명의 영현이 함께 고국으로 돌아가며, 13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공식 봉환식을 거쳐, 문 지사 부부는 고향 태안 추모제 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우운 문양목 지사의 길]
1905년 을사늑약 이후, 겨우 11살이던 소년은 하와이를 거쳐 1906년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대동보국회를 결성해 독립운동의 기틀을 세웠다. 또한 대한제국 외교 고문이면서도 일제의 편에서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기자회견으로 한인들의 공분을 샀던 스티븐스에게 항의했고, 그를 처단한 장인환ㆍ전명운 의사를 구명하기 위한 재판후원회를 결성하는 등 해외 독립운동의 선봉에 섰다.
대한인국민회에 참여해 회장으로도 활동했으며, 독립운동자금 모집과 조국의 실상을 미국 사회에 알리는 홍보 활동, 학교 설립을 통한 청년 교육과 민족정신 고취에 헌신하며, 평생을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한인사회의 지도자로서도 평생을 바쳤다.
<김판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