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랜드에 위치한 이스트베이 한인봉사회(KCCEB, 관장 이윤주)는 새로운 다양한 프로그램을 이번 가을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을 앞으로 수 주에 걸쳐 발표할 계획이다. 그 첫번째로 이민 프로그램 전문화를 소개한다.
다음은 KCCEB가 제공한 이민 전문 왕 챈유 변호사 소개와 일문일답.
오클랜드에 위치한 이스트베이 한인봉사회(KCCEB)는 이민법 전문 변호사를 이민 프로그램의 책임자로 전격 채용하고 이민 서비스에 전문성을 더한다.
새 이민 변호사 왕 챈유씨는 중국계 미국인으로, 강제추방 방어, 국제 인신매매 부터 가족초청 이민까지 각종 이민법(adjustments of status, asylum (and related relief), consular processing, DACA, family petitions, motions to reopen, naturalization, relief for victims of human trafficking, relief for victims of domestic violence and crimes, Special Immigrant Juvenile petitions, waivers of inadmissibility and more.)에 경험이 풍부한 이민법 변호사로 구글(Google)에서부터 국선 변호까지 광범위한 경력을 지니고 있다.
이스트베이 한인봉사회는 왕 챈유 변호사와 함께 한인 이민 프로그램 한인 직원을 통해 영어소통이 자유롭지 못한 한인들에 한층 더 향상된 이민 법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아래는 왕 챈유 변호사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이민법을 하시기로 결정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제가 이민법을 선택하개 된 것은 저희 가족의 복잡다난 했던 이민 역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무려 30년 이상 여러가지 비자를 거쳐가면서 불투명한 미래와 신분때문에 어려움을 격었고 적절한 이민 변호사를 만나서야 비로소 영주권을 취득하게 된 것을 성인이 된 후에 알게 되었지요. 저는 매우 어려서 정확하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그 당시는 알지 못했지만, 저희 부모님께서 추방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에 항상 불안해 하신것은 알 수 있었고 또 그 불안함이 저에게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러한 경험때문에 이민 과정이 개인이나 가족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너무나 잘 알게 되었고, 이민자 개인이나 가족이 이민과정을 순조롭게 거쳐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국선변호인부터 Google기업변호사까지 여러가지 경험을 가지고 계신데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Google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굉장히 성공적인 커리어로 가는 지름길일 것 같은데 왜 비영리 단체에서 일하기로 하셨는지요?
저는 보통사람을 도울때, 또 그 보통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권력있는 정부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울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낌니다. 이민법이 그러하였고 국선 변호가 그러하였습니다. 법의 다른 쪽은 어떠한가를 정부기관이나 큰 기업에서의 경험을 통해 더 잘 알 수 있었고요. 결국은 제가 어떤 한 사람이 거대한 힘의 불균형을 극복하고 설 수 있게 도와 주었을 때, 그 한 사람의 인생이 돈만으로는 해결될 수는 없는 긍정적 변화를 이루도록 도울 수 있었을때 가장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이스트베이 한인 봉사회는 전에 일하셔던 API Legal Outreach처럼 전문 법률 비영리단체가 아니라 광범위한 영역을 포괄하는 단체인데요, 앞으로 봉사회에서의 이민 서비스는 어떻게 다른 경험이 될지.
이스트베이 한인 봉사회는 규모는 작지만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단체로서 가장 도움이 필요한 이민자를 돕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단체입니다. 이민 법 서비스만이 아니라 이민자들이 필요로 하는 다른 여러가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훨씬 더 효과적으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민프로그램도 다른 프로그램과 발을 맞추어 같이 지속적 발전을 거듭해서 지역사회를 더욱 포괄적으로 도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될 것입니다.
■기억에 남는 케이스가 있으신지.
인신매매 피해남성을 도운 기억이 잊혀 지지가 않네요. 그 분은 선진국에서 왔었고 또 그나라에 있는 고급식당에서 요리사(쉐프)로 일을 했었지요. 그 분이 고용되어 있던 회사가 미국에 진출을 고려하고 있던 중에 다른 단체로 부터 베이지역에 세계적 수준의 식당을 열고 새로운 요리사들을 키우는 책임자 자리를 제의받았고 비자를 받기위해 엄청난 수수료를 내야했지요. 미국에 오면 훨씬 더 많은 벌게 해 주겠다는 보장을 받았으나 막상 미국에 도착하자 고용주가 하루에 18시간, 일주일에 휴일 없이 일하도록 요구하면서, 주거지도 고용주가 매일의 일상을 통제하고 제한할 수 있는 장소로 정해져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완전히 지치고 망가지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결국 가까스로 그 지옥을 탈출했으나 심신미약으로 쓰러저서 병원으로 실려갔고, 경찰 조차도 그를 ‘노예’ 라고 부르면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과정에서 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처음 그를 만났을때 지나치게 마르고 불안에 떨고 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경찰이 농담처럼 그를 노예라고 불렀으나 사실상 그는 노예화 되었으니 아이러니지요. 이제 그 분은 적절한 법적 신분이 생겼고, 가족과 만나 살고 있으며 체중도 늘었고 영주권을 기다리고 있으며 다시 훌륭한 쉐프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