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한인장학재단에서 장학금과 장학증서가 교육원에 도착하였다.
지난 7월 유난히도 복잡한 서류들을 심사하며 가장 적합한 수혜자를 찾다가 끝까지 미비 된 서류때문에 스탠포드 학생을 상위순위로 올리며 ‘이 학생은 어렵진 않을텐데 굳이 장학금을 주어야 하나?’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학업으로 바쁜 학생에게 와서 받아가라 할 수 없어 우편으로 보내줄 지, 직접 만나서 받고 싶은지 메일을 보냈다. 학생은 와 주시면 감사하며 학교 안내도 해주고 싶다고 답이 왔다.
10월 끝자락 살짝 내려간 기온에도 햇살이 따사롭게 감싸주던 날 스탠포드 교내 식당 앞에서 기다리던 크리스티는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는 달리 매우 수수한 옷차림과 온화한 미소의 앳된 소녀였다.
<강완희(오른쪽) 교육원장과 재미한인장학재단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은 스탠포드대학 재학생 크리스티.>
“대한민국 교육부에서 사 줄게요. 맛난 것 드세요.”라고 호기롭게 말했지만 그녀가 평소 먹는다는 연어 포케를 마주하며 이런저런 이야기와 함께 하였다.
한국어가 완벽하여 당연히 한국에서 태어난 줄 알았지만 아빠가 수술용 로봇을 연구하려고 스탠포드에 왔을때 이곳에서 출생하였다는 말이 놀라웠다. 한국학교도 다녔고 집에서는 부모님과 항상 한국어로 대화해서 말은 하지만 글쓰기와 읽기는 부족하다고 겸손해 했다.
사회학과 생체역학(Biomechanical Engineering)을 복수전공하고 음악을 부전공한다는 그녀에게 분야가 많이 다른 것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무슨 일을 하든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학업 이외에 하고있는 일들이 궁금해졌다.
2020년 팬데믹과 함께 온라인 수업으로 집에서 시작한 대학생활 첫 1년은 자고 일어나 1분만에 수업에 참여할 수도 있어 편하고 좋았는데, 2학년이 되어 캠퍼스에 와서 플룻과 피아노를 동아리 멤버들과 함께 연습하며 연주회도 열고,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였던 이력으로 여전히 대회에도 학교 이름으로 출전하며 보내다 보니 다시는 온라인 수업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다며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이 생활에 너무 감사한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푸른 잔디와 휘늘어진 나무, 벤치와 야외 테이블 이곳 저곳에서 담소를 나누는, 랩탑과 대화하는, 자전거로 씽씽 지나가는, 여유롭게 걸어가는 이들을 보니 여기가 상위 0.1%의 특별한 학생들에게만 입학이 허용된다는 대학이 맞나 싶었다.
크리스티는 흔히 말하는 ‘Duck Syndrome’이 여기 학생들에겐 적용되는 것 같지 않다며 여유로운 척 하기보다 실제로 여가생활을 즐기면서 학업도 열중할 줄 아는 친구들이 있어 좋다는 말을 했다. 식사 후 교내 이곳저곳을 안내해주는 빠르지 않은 그녀의 걸음걸이에서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스탠포드 대학의 부유한 집 자제들에게 장학금을 주어야 할까 하며 심사 중에 고민했던 것은 나의 편견이었다. 크리스티는 사실 등록금이 중산층 가계에 가장 큰 부담이 되기에 천달러의 장학금은 본인에게 매우 소중하다며 재미장학재단 장학생이 되어 감사하다고 하였다.
두시간여 끊임없이 유쾌하게 이어진 대화 후 아쉬운 헤어짐에 손을 잡아보고 싶어졌다. 내 손에 들어온 그녀의 손은 작고 가냘펐다. 이 손으로 미국 태권도를 어떻게 제패했을까? 작아도 작지 않은 태권소녀의 당찬 비상이 기대된다.
<강완희 샌프란시스코 교육원장>